인터뷰 ➋

종이의 한계를 넘어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지희 작가

종이접기를 뛰어넘어 입체적인 작품이 되는 페이퍼아트.
종이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정교한 느낌을 살려
멋진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어 요즘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지희 작가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페이퍼아트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작가 중 한 명이다.

writer. 최행좌 photo. 황지현

종이로 만든 예술, 페이퍼아트

페이퍼아트(Paper Art)는 평면의 종이를 활용해 입체적인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종이가 가진 특유의 질감을 통해 다른 예술 분야보다 정교하고 섬세한 느낌이 살아있다. 그래서 페이퍼아트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 무대디자인, 광고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팝업북, 팝업카드도 페이퍼아트의 일종이다.
이지희 작가는 페이퍼아트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주목을 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종이로 뭐든지 만들 수 있는 페이퍼아트의 매력에 매료된 그의 작품은 일상의 소재를 대상으로 한다. 예를 들어 냉장고, 세탁기, TV 같은 가전제품부터 삼겹살, 당근, 감자, 상추 같은 식재료와 비숑, 슈나우저, 푸들 같은 강아지까지 종이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다. 이렇게 일상의 물건들은 그의 손에서 종이로 재탄생한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꼼지락꼼지락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어떻게 페이퍼아트의 길을 걷게 됐을까? 디자인 작업에 페이퍼아트 작품을 도입한 게 시작점이었다. 광고회사를 시작으로 IR 전략, 정책홍보, 기업 PR 등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그는 독립 후에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클라이언트의 애뉴얼 리포트를 작업할 때 페이퍼아트를 만들었어요.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어 선택했는데 제 작품을 보고 ‘신기해요’, ‘어떻게 만들어요’라고 반응해주시는 걸 보니 뿌듯하더라고요. 작업하는 동안 재미도 있었고요. 좋은 시도였던 것 같아요.”
그 이후부터 그는 종이로 이것저것 만들었다. 초기에 강아지, 피아노, 운동화, 식재료와 조리도구 등 만든 것을 SNS에 하나하나 올렸다. 자연스럽게 일로 이어졌고, 그는 그렇게 페이퍼 아티스트가 됐다.

종이로 만든 하이델베르크 인쇄기, 2019 / 사진 제공_이지희 작가

각으로 디테일하게 표현

이지희 작가의 작품은 크기가 다양하다. 종이로 만들어서 사이즈가 작을 거라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실제보다 작게 만드는 것도 있지만, 실물 크기로 제작되는 작품도 여럿이다. 때론 사람이 직접 탈 수 있는 자동차나 기차를 만들기도 한다. 2020년에 종이로 만든 기차, ‘live in DMZ’가 그렇다. 실물 크기의 기차는 두꺼운 종이상자를 결합해 제작했다. 제작 기간만 수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작은 작품만 만들다가 이렇게 큰 작품을 제작하면, 또 다른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몇 달 동안 집중해야 겨우 한 작품을 완성하는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지만 완성하고 나면 뿌듯해요. 마치 인형집으로 들어간 기분이라고 할까요.”
그의 작품은 ‘각(면)’을 살린 형태가 특징이다. 2014년부터 선보인 강아지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반려견에 대한 추억을 모티브로 제작한 것으로, 종이 강아지들은 다양한 표정과 동작을 각으로 접어서 디테일을 살렸다.
“어떤 작업이든 허들이 있지만, 작업할 때마다 상상하지 못했던 게 새록새록 떠올라요. ‘이렇게 만들면 어떨까’, ‘이런 작업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죠. 최근 <문화올림#> 표지를 위해 달항아리를 제작할 때는 매끄럽고 포근한 달항아리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접선을 모두 없애고 제작했어요. 완성하고 나서 ‘각’을 살린 달항아리는 어떤 느낌일까 해서 제작하게 됐는데 새롭더라고요.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제작하는 과정을 압축해 보면, 우선 작업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스케치를 하기도 하지만 모델링을 직접 해보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모델링 후에 문제점을 보완해 작업을 도면에 옮긴 다음 구체적인 방법과 순서를 정한다. 이후에 도면이 완성되면 잘라서 제작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 작업 과정은 고난도의 집중력과 섬세함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는 작업할 때 꼭 지키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고 한다.
“작품의 구상부터 아이디어를 풀어가는 과정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에요. 종이를 자르고, 붙이기 전에 작품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방향이 명확해야 작업이 잘되기도 하고, 작업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더라고요. 완성했을 때 작품이 잘 나오기도 하고요.”

  • 클래식 카메라 시리즈, 2017 / 사진 제공_이지희 작가

  • live in DMZ, 2020 / 사진 제공_이지희 작가

  • 작품의 구상부터 아이디어를
    풀어가는 과정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에요. 종이를 자르고,
    붙이기 전에 작품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방향이 명확해야
    작업이 잘되기도 하고, 작업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더라고요.
    완성했을 때 작품이
    잘 나오기도 하고요.

페이퍼아트의 끝없는 변주

그의 삶은 마치 ‘페이퍼아트’에 맞춰진 것 같았다. 그만큼 좋아하고, 사랑하며, 가장 잘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가 이 길을 우직하게 걸을 수 있는 원동력은 뿌듯함이다.
“매일 종이로 작업을 하다 보니 가끔 무뎌질 때도 있는데, 제 작품에 ‘종이로 만들었다니 믿을 수 없어요’, ‘생명력이 느껴져요’라고 말해주실 때 보람을 느껴요. 2017년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도 클래식 카메라 시리즈가 해외에서 반응이 뜨거웠어요. 놀랍기도 했고, 이걸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 새로운 작품에 몰두하고 있는 이지희 작가는 페이퍼아트 작업은 한계가 없다고 말한다. 주로 색지를 사용하는 데 색도 다양하고, 독창적인 패턴과 색 배합으로 만들 수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단다.
“무엇보다 페이퍼아트는 소재에 제한이 없어요. 크기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요. 완성된 작품은 사진으로 남겨놓을 수도 있죠. 저는 스톱모션을 이용한 영상도 제작하고 있어요.”
수백 장에서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 영상을 만드는 게 고되고 힘들지만, 덕분에 그가 만든 작품들은 생명력을 얻는다. 이처럼 그는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오는 4월에는 그냥 화면으로 보는 스톱모션이 아닌 또 다른 시도를 한 그의 작품을 초대전에서 만날 수 있다.
“2017년 첫 개인전 이후로 너무 오랜만이라 부담이 되는데요. 이번 초대전을 계기로 페이퍼아트가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더 큰 목표가 있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냥 이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게 꿈이라고 한다. 앞으로 그가 만들 무수한 종이의 세계, 어떤 소재가 페이퍼아트로 변주할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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